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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11 vs 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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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2한편 위장순양함들의 활동은 가을로 접어들며 서서히 한계를 드러냈다. 호송선단화가 진행되면서 손쉬운 사냥감이던 독립 항행선이 줄어들었고, 연합군이 상선 검문 절차와 항로 통제를 강화하면서 위장의 효력도 떨어져 갔다. 그러나 이들이 넉 달간 증명한 사실, 즉 소수의 습격함만으로도 루이나의 해상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독일 해군 수뇌부의 확신을 굳혔다. 위장순양함이 이 정도라면, 진짜 군함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수리를 마친 장갑함들이 출격 준비에 들어간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123123=== 장갑함 출격과 선단 학살 (1940년 9월~11월) ===
1241940년 가을, 노르웨이 전역의 상처를 수습한 독일 해군은 마침내 정규 군함에 의한 통상파괴전에 착수했다. 첫 주자는 디젤 기관의 항속거리를 앞세운 장갑함이었다. 9월 말, 장갑함 1척이 악천후를 틈타 덴마크 해협의 초계선을 돌파해 대서양으로 빠져나갔고, 사전에 배치된 보급함들과 합류하며 사냥터로 향했다. 위장순양함과 달리 장갑함은 숨을 필요가 없었다. 28cm 주포는 어떤 호위함도 사거리 밖에서 찢어발길 수 있었고, 26노트의 속력은 웬만한 추격을 뿌리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단 하나, 진짜 전함과 마주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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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그리고 11월 5일, 이 장갑함은 대서양 한복판에서 루이나로 향하던 37척 규모의 호송선단 HX-84와 조우했다. 호송선단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선단의 호위 전력은 14cm 포 몇 문을 얹은 무장상선순양함 저비스베이 단 1척. 장갑함의 실루엣이 수평선에 나타난 순간, 선단의 운명은 산술적으로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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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호위함장의 판단은 즉각적이었다. 그는 선단에 산개와 연막 전개를 명령한 뒤, 자함의 뱃머리를 장갑함 쪽으로 돌렸다. 사거리도, 장갑도, 속력도 상대가 되지 않는 돌격이었다. 장갑함의 주포탄이 명중하기 시작한 뒤에도 호위함은 침로를 바꾸지 않았고, 함교가 날아가고 선체가 불덩이가 된 상태로도 40여 분을 버티며 계속 전진했다. 이 40분 동안 선단의 상선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연막과 스콜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호위함이 마침내 침몰했을 때, 장갑함이 해가 지기 전까지 따라잡아 격침한 상선은 12척이었다. 나머지 25척은 밤바다 속으로 사라져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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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저비스베이의 최후는 즉시 전설이 되었다. 함장에게는 사후 최고 무공훈장이 추서되었고, 생존 승조원들의 증언은 신문 1면과 라디오, 뉴스 영화를 타고 연합국 전역에 퍼졌다. 침몰 직전까지 마스트에 군함기가 걸려 있었다는 증언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었다. 위장순양함 시기의 공포와 무력감에 짓눌려 있던 루이나 여론에게 이 이야기는 처음으로 주어진 '싸우다 죽은 이야기'였고, 전쟁 채권 포스터부터 신병 모집 광고까지 어디에나 그 이름이 등장했다. 격침당한 쪽이 승리의 상징이 되는 역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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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그러나 해군 내부의 결산은 냉정했다. HX-84의 손실 자체보다 심각한 것은 그 여파였다. 장갑함이 대서양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후 2주간 모든 호송선단의 출항이 중지되었고, 이미 항해 중이던 선단들은 항로를 대폭 우회하느라 수송 일정 전체가 연쇄적으로 붕괴했다. 단 한 척의 습격함이 격침한 것은 상선 12척이지만, 마비시킨 것은 루이나의 해상 수송 체계 전체였던 것이다. 문제의 장갑함은 이후로도 남대서양과 인도양을 5개월간 유유히 누비며 상선 16척을 추가로 격침하고, 연합군 수색 전대들을 조롱하듯 따돌린 끝에 이듬해 봄 본국으로 무사 귀환했다. 단일 수상함 통상파괴 작전으로는 전쟁 전 기간을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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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HX-84는 양측 모두의 교리를 바꿔 놓았다. 연합군 측이 얻은 교훈은 명확했다. "전함급 습격함에는 전함급 호위가 필요하다." 이후 주요 선단에는 구식 전함이나 순양전함이 1척씩 배속되기 시작했고, 실제로 12월 랜드 내해 어귀에서 출격을 시도하던 독일 순양전함 전대가 호송선단 호위로 붙어 있던 구식 전함 1척을 발견하고는 교전을 포기한 채 회항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 처방의 효과가 입증되었다. 독일 측 수뇌부도 같은 장면에서 반대 방향의 결론을 끌어냈다. 구식 전함 호위를 정면에서 제압하려면 장갑함이 아니라 고속전함을 내보내야 한다는 것. 양측의 결론이 맞물리며, 전투는 다음 단계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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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한편 이 소란의 한가운데서 루이나 해군 인사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HX-84 사태 직후 소집된 전훈 분석 회의에서, 예비역 편입 대기 상태나 다름없던 한 제독이 작성한 보고서가 수뇌부의 책상에 올라온 것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세 줄이었다. 호위 없는 선단은 선단이 아니다. 호위는 함정의 수가 아니라 체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체계를 만들 시간은 이번 겨울뿐이다. 보고서의 서명자는 [[테오도르 란츠]]였다.
124137=== 란츠 개혁: 호송선단 체계의 확립 (1940년 12월~1941년 1월) ===
125138=== 뤼첸스의 내해 침입 작전 (1941년 1월~3월) ===
126139=== 루이나 해군 최악의 날 (1941년 5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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